독일의 정밀한 아우토반을 달리기 위해 발급된 최신 운전면허증이 있습니다. 이 면허증을 가진 운전자가 대한민국 지방의 좁고 가파른 골목길, 혹은 꽉 막힌 출퇴근길 도심에 들어섰습니다. 과연 이 면허증과 독일식 운전법이 대한민국 도로 위에서도 안전하게 통할 수 있을까요?
국내에서 지방자치를 담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보충성 원칙'이 바로 이 독일산 면허증과 같습니다. 기초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초가, 안 되는 것은 광역이, 그것도 안 되는 것만 중앙정부가 보충적으로 해야 한다는 이 우아하기 짝이 없는 이론은 독일의 강력한 연방제와 두터운 지방재정이라는 '아우토반' 위에서 탄생한 법이론입니다.
STEP 1 · PERCEPTION현실인식: 아우토반의 이론을 한국의 골목길에 들이밀다
독일에서 통했다고 대한민국에서 통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지방은 인구 소멸과 세수 결손이라는 거대한 낭떠러지 앞에 서 있습니다. 자립할 최소한의 기초 체력(재정과 인력)조차 없는 기초지방자치단체에게 "보충성 원칙에 따라 스스로 먼저 해결하라"고 요구하거나 이를 위해 권한 확대에만 집중하는 것은 엔진이 고장 난 경차를 부추겨 가파른 오르막길을 혼자 올라가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 원칙은 도그마가 되어 중앙정부에는 책임을 회피할 좋은 명분을 주고, 지방정부에는 감당할 수 없는 의무만 떠넘기는 '책임 전가의 덫'으로 변질되었습니다.
QUESTION질문: 21세기 대한민국에 맞는 한국형 자치분권은 무엇인가
서양의 제도를 이식하는 데 몰두해 온 기성 법학은 이 거대한 모순을 외면해 왔습니다. 현행법이 보장하는 분권의 방식이 오히려 지역을 고사시키고 있다면, 그 법과 제도는 결코 '좋은법'이 아닙니다.
좋은법연구소는 교과서 속 독일식 환상에서 벗어나, 날 것 그대로의 대한민국 지방 현실에 작동하는 '현실적 보충성'과 새로운 대안 입법 모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이 어젠다에 대한 구체적인 진단과 제도 개선안은 대안 리포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