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에 소속된 연구자로 일하던 시절, 나에게 끝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 하나 있다. '연구에 실패할 자유'다.
연구보고서는 내 생각이나 신념과 무관하게, 정해진 기한에 맞춰 관례적인 틀에 담겨 반드시 발간되어야 했다. 질문을 붙들고 답이 나올 때까지 파고드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물음이 채 여물기도 전에 결론부터 적어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그런 기계적인 발간 시스템 속에서 나는 일종의 부적응자였다. 나는 자주 실패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실패해 본 적 없는 연구자가 어떻게 성공한 연구를 할 수 있는가. 운이 좋고 머리가 아주 뛰어나서 실패 없이도 좋은 연구를 해내는 예외적인 연구자가 어딘가에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돌아보면 스스로 실패자라 느꼈던 바로 그 시간에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 시행착오를 통해 누구도 대신 쌓아 줄 수 없는 인사이트와 경험을 축적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확신이 그 시간을 버티게 했다. 법학이라는 사회과학은 반드시 현실과의 연결을 통해 기능할 수 있어야 진짜라는 것이다. 교과서 속의 정답은 현장의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 이 홈페이지 첫 화면에 걸어 둔 문장 — 책 속에 멈춰 서 있는 조문이 아니라 지역의 현실에서 실천되는 법이 '좋은법'이라는 — 은 사실 그 시절에 얻은 결론이다.
그래서 나는 독립연구를 선택했다. 연구에 실패할 자유를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 그리고 교과서 속 의미 없는 답이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하는 실천 가능한 법학을 하기 위해서.
좋은법연구소는 그 선택의 결과이자, 이제 막 시작된 실험이다. 이 실험이 어디에 닿을지는 나도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이번에는 다르다. 답이 나올 때까지, 파고들 것이다.
※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견해가 아닌 소장 개인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