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s Note · 소장 노트 03
2026. 7. 30.

낙타, 사자, 어린아이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신은 먼저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어린아이가 된다. 사실 전문을 읽어보지도 못했지만, 니체가 했던 이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머물렀었나 보다. 지금의 나를 설명할 말을, 언제 보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오래된 철학자의 말에서 찾아내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다. 니체는 정신의 변화라고 표현했지만, 돌아보면 나에게 그것은 마음의 일이었다.

낙타는 짐을 지는 마음이다. "해야 한다"는 명령 앞에 순종적으로 무릎을 꿇고, 가장 무거운 짐을 청해서 지고 사막을 건넌다. 기관에 소속되어 있던 시절, 보수적인 학자들의 세상에서 나는 그랬다. 옳지 않다고 느끼는 일도 관례라는 이름이 붙으면 짊어졌다. 물음이 여물기도 전에 결론부터 적어야 하는 시스템의 불합리도, 똑같은 주제가 반복되는 세미나에서 또 똑같은 견해를 표현하는 일도, 견디는 것이 미덕인 줄 알고 순응했다. 낙타는 성실하다. 나도 성실했다. 그러나 낙타의 성실은 그 짐이 정당한지 묻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낙타는 사자가 된다. 사자는 "나는 원한다"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자는 "너는 해야 한다"는 이름의 용과 싸워 자유를 쟁취한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더 이상 이런 방식은 옳지 않다고 선언한 순간이다. 그 선언은 초라했고 쓸쓸했으며 내 선언이 잘못된 선택이 아닐까 사실 수없이 되새겼다.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런데 다시 낙타가 될 수는 없었다. 차라리 연구가 아닌 다른 일을 할 생각은 문득문득 들었지만, 다시 그 불합리한 세상에 그들이 원하는 낙타가 되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수없이 많은 날을 망설이고 번민을 거듭하다 나는 운명처럼 마침내 한 발을 내딛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서 거리낄 것도 없었다. 고민만 거듭하던 독립연구소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그 순간부터 최신 어젠다를 몇 개씩이나 분석해서 연구소 홈페이지에 업로드하기까지 불과 한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미친듯이 원고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인터넷 홈페이지 만들기에 전혀 망설임이 들지 않았다. 솟아나는 새로운 아이디어 때문에 잠을 이루기도 어려운 날이 늘어갔다. 나는 그렇게 독립연구를 너무 좋아하는 어린아이가 되어갔다. 니체는 어린아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 구르는 바퀴, 그리고 성스러운 긍정.

그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짐을 진 낙타도, 싸우는 사자도 알겠는데, 왜 마지막이 하필 아이인가. 그래서 그냥 내 맘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을 뿐, 이내 망각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리라.

요즘 나는 온몸으로 배우고 있다. 지난 며칠 사이 지방자치를 관통하는 세 가지 핵심 어젠다를 정리하고 경기·인천·충북 세 편의 현안 노트를 완결하고, 세 편을 하나의 구조로 묶은 총괄편을 냈다. 보통사람인 이웃들에게 말을 걸기 위한 블로그까지 열었다. 기관에 있던 시절이라면 번아웃을 걱정했을 분량이다. 아니 걱정과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이런 스케줄로 글을 완성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지치기는커녕,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들여다볼 자료가 궁금해서 마음이 급해진다. 결산서와 조례와 법령을 뒤지는 일이, 나에게는 지금 그 무엇보다 행복한 놀이가 되었다.

짐이었던 일이, 놀이가 되었다.

낙타의 시간이 없었다면 사자는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 몰랐을 것이고, 사자의 시간이 없었다면 아이는 놀 자리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어느 시간도 버릴 것이 없다.

이제는 안다. 무언가를 세우는 힘은 부정이 아니라 긍정에서, 의무가 아니라 놀이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 즐거움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나는, 니체가 성스러운 긍정이라 불렀던 그 자리에 서 있다.

※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견해가 아닌 소장 개인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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