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앓았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무기력해지는 시간은 예고 없이 온다. 살면서 적지 않은 상처가 있었고, 그 상처들이 곪고 터지는 동안 이런 시간을 꽤 많이 지나왔다.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득 다시 그 시간을 만났을 때,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그런 시간이 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꼬박 사흘을 침대 위에서 보냈다.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작 무기력의 한가운데서는 아픈 줄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픈지 배가 고픈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몸이 문을 닫아걸면 감각도 함께 닫히는 모양이다.
아픔은 오히려 깨어날 때 온다. 다시 일어나 움직이고 웃기 시작할 때에야 온몸이 뻐근하고 삐거덕거린다. 언 손이 녹을 때에야 시린 것과 같다. 감각이 돌아온다는 것은 멈춰 있던 것들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삐거덕거리는 몸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가장 명징하게 알려 준다.
직업 탓인지, 여기서도 진단을 떠올린다. 나는 지역의 살림을 들여다보는 일을 한다. 숫자가 보내는 신호를 읽고 진단서를 쓴다. 그 일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신호가 잡히지 않는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는 것.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성가신 일이지만, 살아 있는 체계만이 신호를 보낸다. 몸도, 지역의 살림도 그렇다.
다시 일어나고, 움직이고, 웃기 시작하는 내가 반갑다. 인생 참 쓰다 싶다가도, 기특하다 싶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매 순간의 삶이 다 이렇게 고군분투로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자리에서 다들 이렇게 앓고, 깨어나고, 다시 걷는구나.
오늘은 광주에 간다. 뻐근한 몸을 싣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창밖을 본다. 몸은 아직 삐거덕거리지만, 그 소리가 오늘은 살아있는 소리로 들린다.
※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견해가 아닌 소장 개인의 기록입니다.